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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후 아내와 연말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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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이 넘도록 감성적인 삶을 살았던 나는 늦은 나이에 자본주의 추운 겨울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후 그 후유증이 자연적으로 치유되지 않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 몇 년 전부터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뇌가 점점 이성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지만 난 늘 감성적인 나를 그리워했고 특히 겨울이 되면 그 갈증이 더 심해지곤 한다.

 

며칠 전 우연히 아내에게 슬픈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는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 연극관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렇게 아내와 연말 데이트를 퇴근 후 커피숍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는 책과 잡지를 읽고 난 세금 관련 시험책을 영상과 함께 봤다. 

아무런 말은 없었지만 그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설렘으로 다가왔다. 

절반은 꾸벅꾸벅 졸면서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ㅋㅋㅋ

 

2시간의 공부가 끝이 나고 저녁을 먹으로 망향비빔국수로 향했다.

 

돈가스와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경양식 돈가스와 매콤비빔국수의 환상적인 만남을 백김치와 단무지가 주선해 주는 느낌의 맛이 났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연극 오거리사진관을 관람하러 대구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했다. 

연말 느낌이 입구부터 물씬 풍겨져 나왔다.

사진으로 인생의 찰나를 박제하며 삶을 살아가는 나는 박제하고 싶지 않은 사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로 영정사진이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찍는 사진이기에 더욱더 찍고 싶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되는지 그 무게조차 상상이 되지 않았다.

 

치매를 앓는 와중에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정신이 올바를 때 영정사진을 찍으러 온 장면에서 너무나 많이 울었다.

영원할 것처럼 행복하게 삶을 살지만 그 추억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대목에서 다시 한번 울음이 터졌다.

연극에 방해될까 봐 입을 막고 공연이 끝이 날 때까지 울었다.

 

연극의 내용을 온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연기해 준 배우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공연이 끝이 나고 눈물을 닦고 입장하기 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무덤덤하게 일어났다.

나보다 더 심하게 울었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동질감이 느껴져서 그런지 아직도 세상은 따뜻한 감성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차가운 겨울의 공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봄보다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여보 오늘 소주 한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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