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명절을 보냈다. 1년에 한 번만 보는 친척분들도 있었고 누군지도 잘 모르는 먼 친척들도 몇 년마다 명절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한 가족당 5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보니 3대가 모이면 족히 60명은 넘었다. 할머니의 진두지휘아래 제사 음식들을 만들었고 어른들은 저녁이 되면 남은 자투리로 술 한잔 하며 그동안의 안부 묻기를 시작으로 자연스레 고스톱으로 이어졌다.
나와 사촌들은 모처럼 배달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상금을 건 윷놀이를 하던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명절 보냈던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차츰 명절에 오는 사람들이 줄기시작하더니 10여 년 전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제 각자의 집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모이면 즐겁고 시끌벅적했던 명절이 시끌벅적하지 않은 명절이 돼 버렸다.
아마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한다. 모이면 즐겁지도 않고 형식만 남아있는 명절이기보다 희생 없이 모두 즐거운 명절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365일 교대근무이다 보니 내게 있어 명절은 아픈 손가락이다. 옛날 감성이 아직 남아있는 터라 일정이 맞지 않아 벌초와 제사를 참석하지 못할 때마다 미안한 감정이 든다. 이번 추석도 마지막하루만 쉬어서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면서 아내와 막내가 많이 아팠다. 새벽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종합감기약과 진단키트를 샀다.
일요일에는 병원과 약국이 문을 여는데가 없었고 추석전날에는 병원에서 대기하다 접수마감이 되어 진료를 보지 못했다. 3일 내내 편의점의 약으로 버텼다.
다행히 몸이 회복되어 추석근무를 마치고 명절첫끼를 차려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동그랑땡과 산적 부추전을 아이들과 함께 준비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이기면 상금을 주고 아내와 내가 이기면 심부름 쿠폰이 생기는 윷놀이를 했다.
잡고 잡히는 치열한 승부는 아이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상금을 나누어 주고 더 놀고 싶었는데 너무 피곤해 이른 시간에 잠이 들어 버렸다.
3시간 뒤에 일어났을 때는 아이들과 아내는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고 했다.
난 가족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는 소원을 빌며 오늘하루를 마감했다.
'입go 먹go 살g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디어 찾은 소울푸드 이가네 해장국 (13) | 2024.09.20 |
---|---|
오전에는 이성적으로 오후에는 감성적으로 살기 (4) | 2024.09.19 |
생일날 (13) | 2024.09.13 |
인생피자를 맛볼수 있는 피제리아 라르도 (7) | 2024.09.11 |
신세계상품권으로 신세계를 경험하다. (6) | 202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