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음식을 고르는데 무척 예민해진다. 그냥 비가 올 뿐인데 괜히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식욕에 잠재된 특정음식에 대한 욕구가 표면 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저녁메뉴를 생각하며 전을 부쳐먹을지, 고기를 구워 먹을지, 칼국수나 라면을 먹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새벽루틴을 마치고 아이들을 위한 하루를 시작했다.
놀이공원을 가기로 해서 그런지 아침부터 상기된 아이들 얼굴이 마치 홍시 같아 보였다.^^
몽글몽글하게 흩어진 구름이 해를 자주 가려 흐리지도 맑지도 않아 야외에서 딱 놀기 좋은 날씨였다.
놀이 공원 안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점을 먹고 왔는데도 한참을 걸어 다니며 놀이기구 몇 개를 타니 금세 배가 고파졌다. 놀이공원을 반쯤 돌았을 때 가까운 매장으로 들어가 햄버거와 치킨을 먹은 뒤 다시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혹시 몰라 챙겨 온 비상용 양산 겸 우산 한 개를 펼쳐 아이들만 씌우고 아내와 나는 옷으로 비를 막아야 했다.
30분쯤 지났지만 비가 그칠 기미가 없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너무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못내 마음이 아팠지만 감기에 걸려 아픈 거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속상한 아이들이 아무 말도 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차 안은 적막했다. 기분도 안 좋고 너무 배고파하는 아이들 위해 오늘 저녁은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줄 라면으로 선택했다.
막내가 라면을 먹으면서 '비 오는 날은 삼겹살을 먹어야지'라고 했다. 시간도 늦었고 이미 라면도 거의 다 먹은 상태라 내일 꼭 먹자고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이가 학교 가는 길에 다시 한번 메뉴를 확인했다.
'아빠,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지?'
퇴근을 하고 아내와 장을 보러 갔다. 삼겹살과 곁들여 먹을 야채를 사서 박스 가득 담았다. 장을 보러 갈 때 조금씩 내리던 비가 집에 도착하니 멈춰버렸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 곁으로 막내가 다가와 못내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삼겹살은 비가 올 때 먹어야 하는데 비가 그쳐버렸어. 소나기처럼 비가 많이 내릴 때 먹고 싶었는데...'
날씨와 음식 궁합 기호가 생긴 어린 막내의 말에 기특하고 웃음이 나 아내가 저녁 먹는 동안 BGM으로 빗소리를 준비해야겠다고 한다. 비는 오지 않지만 날씨가 제법 흐리기 때문에 빗소리를 들으며 운치 있게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비 오는 날엔, 삼겹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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