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린다.
명절 내내 감기와 폭염으로 지쳐버린 난 가을로 물들지도 못하고 낭떠러지 앞에서 애써 녹색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리며 벌과 나비꽃들도 나처럼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만 하고 있다.
아직도 반팔이 더워 나시를 입고 돌아다니며 부끄러움을 잊은 채 나의 속살을 드러낸다.
계절을 잊어버린 지금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가을을 장착해 버린 나로서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그 본능을 못 물려줄까 안타까워만 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못 느끼는 삶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이제 현실이 될까 하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앞으로 없어져 버릴지도 모를 가을을 아이들과 이번에 최대한 만끽하며 보낼 생각이다.
비가 내린다.
늦어서 미안해서 그런지 가을을 잔뜩 묻힌 비를 뿌리고 있다.
가을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성이 무진장 흔들린다.
오늘은 오후 근무라 아내 새벽수영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다.
그냥 기다리면 지루하다 보니 책을 읽거나 편의점에서 새벽라면을 먹는데 오늘은 비가 오는 관계로 후자를 택했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아내에게 줄 단지우유를 구입했다. (물속에 있다 나오면 단지우유가 가장 맛있는 거 같아서^^)
단지우유에 도전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 글자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용기가 생기는 거 같았다.
아내를 바래다주고 일터로 향했다.
빗방울이 거세지다 오후가 되니 잠잠해졌다. 너무 오래 머무른 여름을 밀어내고 가을 보고 손짓하는 느낌이 들었다.
모처럼 가을처럼 일을 하고 퇴근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비와 너무 잘 어울리는 삼겹살 냄새가 났다.
삼겹살에 나오는 기름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아 감자와 대파까지 모두 합세한 접시를 보고 소주 한잔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먼지 모를 오늘하루도 다 가 버렸다. ㅠㅠ
정답이 있는 삶의 하루가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저런 감정에 휘둘려 어쩌다 보니 하루가 다 가 버렸다.
충만한 삶의 하루는 어떤 것일까? 잊지 못할 정도로 기억하고 싶은 날은 어떤 날일까?
그렇지 않은 날들이 기억되는 건 왜일까?
오늘은 그냥 센티해지고 싶나 보다.~~~